의처증ㆍ의부증(정신건강의학과 김희철 교수)
2017.05.24 2304 관리자
사랑의 검은 그림자, 의처증ㆍ의부증
약물치료보다 신뢰감 형성이 더 중요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말이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사랑이란 특정 대상에
게 온갖 관심과 성적 에너지를 쏟아 붓는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사랑은 대상에게 밀착되어 꼭 붙어 있고자 하는 에너지의 집중 상태이며, 상대방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는 만큼 상응하는 에너지가 돌아오지 않을 때 좌절감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배신감, 미움이 생겨난다. 즉 사랑이 한 순간에 증오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증오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한다. 증오의 이유를 자꾸만 상대방에게서 찾게 되고 상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의심증이 심해지면 편집증이 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의처증ㆍ의부증이다.
55세 남자가 다소 흥분된 상태로 가족들에 이끌려 병원에 왔다. 이 남자는 5년 전부터 부인이 직장 상사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고, 부인이 직장 업무나 회식 관계로 늦게 귀가를 하면 옷의 냄새를 맡고 속옷을 검사하고 부인의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매번 확인하기도 했다. 이 남자는 과거 IMF로 인해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 후 10여년 동안 여러 장사를 해보았으나 계속 실패해서 집에서 무위도식하며 지냈고 그때부터 부인이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원 3개월 전에는 부인을 간통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위 사례는 의학적으로 망상장애에 해당되며 흔히 편집증이라고 불린다. 이는 정교하게 체계화된 지속적 망상을 가지고 있는 질병이다. 망상은 특정 영역에서 교정이 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을 말하며, 망상장애 환자들은 이러한 망상 이외의 다른 사고체계나 인격은 적절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정상인과 구별하기 쉽지가 않다.
망상장애의 대표적인 한 유형이 의처증ㆍ의부증이다.
이것은 일종의 질투형 망상장애로서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오셀로의 주인공이 보였던 행동과 유사하다고 해서『오셀로 증후군』으로도 불린다. 오셀로는 부하의 흉계에 휘말려 사랑하던 부인 데스데모나를 의심하여 죽이고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정상인들도 가끔씩 배우자가 혹시 바람을 피우지 않나 의심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니라는 증거가 확실해지면 자신의 의심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배우자를 다시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생기면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어도 전혀 믿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왜곡된 사랑에서 싹트는 일반적인 질투와는 달리 상습적으로 배우자의 가상 불륜 사실에 대한 증거를 찾아 상대를 압박하거나, 지독한 의심과 폭력 행동을 표출한다. 배우자가 외출을 못하게 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 조사하기도 한다.
의처증∙의부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정신분석학적 이론에 따르면 내재된 동성애적 성향이 이런병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어렸을 때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된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뇌에서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활성의 변화가 이런 병을 일으킨다는 설명도 있다. 심리적으로는 의심의 밑바닥에 열등감이 깔려 있기도 하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게 되면 열등감이 더욱 심해지면서 질투 망상이 생기기 쉽다. 갑자기 실직을 했다든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외모에 손상을 받거나 성기능 장애가 생긴 경우, 혹은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가장으로 서의 역할을 못하는 경우 등이 그 예다.
망상장애 환자들은 의심이 많고 냉담하여 치료관계를 형성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긴 시간과 치료자의 인내가 필요하다. 망상내용을 비판하거나 동조해서는 안되며 환자의 비밀을 전적으로 지킨다는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약물을 통해 망상을 없앤다는 것이 쉽지는 않으며 우선적으로 치료는 망상을 없앤다기보다는 사회적응을 잘하도록 도와주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마음의 갈등을 잘 들어 주고 신체적 불편함을 잘 해소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는 부부 상담 등으로 환자의 신뢰감을 충분히 얻은 뒤에 망상증에 준한 항정신성 약물을 처방하게 된다. 그 후 증상이 개선되기 시작하면 서서히 약물 투여량을 줄여가며 약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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